그의 모형에서는 지구가 중심에 있고 행성은 작은 원(주전원)을 그리며 큰 원을 돕니다. 행성이 때때로 거꾸로 가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역행)까지 설명할 수 있었고, 일식과 월식, 행성의 위치를 상당히 정확히 예측했습니다. 이 책은 약 천 개의 별과 48개 별자리를 정리한 목록도 담고 있습니다.
이 모형은 오늘의 눈으로 보면 틀렸지만, 쓸모없지는 않았습니다. 관측을 기록하고, 수학으로 예측하고, 어긋나면 고친다는 과학적 방법의 틀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슬람 세계의 천문학자들은 이 책을 번역하고 비판하고 개량하며 천문학을 이어 갔고, 그 전통이 결국 유럽으로 돌아와 코페르니쿠스에게 닿았습니다.
그러니 ‘틀린 과거’를 비웃기보다, 한 시대가 가진 최선의 도구로 하늘을 읽으려 한 노력을 기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오늘의 우리 모형도 언젠가 개선될 것입니다.
시편 19편의 시인은 모형을 몰랐지만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고 노래했습니다. 우주를 설명하는 모형은 시대마다 바뀌어도 하늘이 가리키는 창조주는 바뀌지 않습니다. 또 잠언 25:2은 일을 살피는 것이 왕의 영광이라 하니, 틀리면서도 탐구하는 길은 믿음과 충돌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볼 질문
내가 믿고 있는 것 중에, 시간이 지나면 ‘더 나은 설명’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바뀌지 않을 것은 무엇일까요? 댓글로 생각을 나눠 주세요.
그런데 같은 날 같은 시각,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막대기가 짧은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이 그림자 각도가 약 7.2도, 곧 원 한 바퀴(360도)의 50분의 1이라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두 도시가 지구 둘레의 50분의 1만큼 떨어져 있다는 뜻이 됩니다. 두 도시 사이의 거리를 약 5,000스타디아로 보고 50을 곱해 지구 둘레를 약 25만 스타디아로 계산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우주에서 직접 지구의 곡선을 봅니다. 이미지: NASA/JSC · 출처: NASA
1스타디온의 정확한 길이가 알려져 있지 않아 이 값이 실제(약 4만 km)와 얼마나 가까운지는 학자마다 평가가 다릅니다. 어떤 길이를 택하느냐에 따라 오차가 몇 퍼센트에서 십여 퍼센트 정도로 추정됩니다. 중요한 것은 정확도보다 방법입니다. 막대기, 그림자, 약간의 기하학만으로 지구 전체의 크기를 구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이것이 우주과학의 첫 번째 교훈입니다. 우리는 직접 가 볼 수 없는 곳의 크기도 눈앞의 현상을 정밀하게 관찰하고 논리적으로 따져 알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은 훗날 별까지의 거리, 은하의 크기, 우주의 나이를 재는 모든 방법의 뿌리가 됩니다.
성경은 사람에게 땅을 다스리고 탐구하는 이성을 주셨다고 말합니다(창 1:28). 그리고 하나님은 욥기 38장에서 땅의 기초와 척도를 누가 정했는지 물으시며 창조의 크기 앞에서 인간을 겸손하게 하십니다. 지구의 크기를 잰 이성은 대단하지만, 그 크기를 정하신 분 앞에서는 모두 작습니다. 이사야 40장도 하나님이 하늘과 땅과 바다를 손수 헤아리시는 분이라고 노래합니다.
생각해 볼 질문
오늘 우리가 당연하게 아는 것 중에, 에라토스테네스처럼 ‘직접 보지 않고도’ 알게 된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댓글로 생각을 나눠 주세요.
우리는 지금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으로 130억 년 전의 은하를 보고, 사람을 다시 달 근처로 보내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맨눈으로 별자리를 그리던 사람들이 망원경을 만들고, 법칙을 찾고, 우주선을 쏘아 올리기까지 수천 년이 걸렸습니다. 이 글에서는 우주과학을 한 단계씩 앞으로 밀어낸 결정적인 순간 열두 장면을 따라가 봅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신앙과 과학이 어떻게 만났는지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① 기원전 3세기 — 지구의 크기를 재다 (에라토스테네스)
이집트의 도서관 사서였던 에라토스테네스는 같은 날 정오에 두 도시의 그림자 각도가 다르다는 사실로 지구 둘레를 계산했습니다. 그가 얻은 값은 실제와 크게 어긋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됩니다(정확한 오차는 당시 거리 단위의 해석에 따라 논쟁이 있습니다). 막대기와 그림자만으로 구형 지구를 측정한 이 일은 눈에 보이는 현상에서 보이지 않는 규모를 추론한다는 과학의 정신을 보여 줍니다. 비슷한 시기에 아리스타르코스는 해가 중심이라는 생각까지 제안했지만, 당시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행성의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정리한 《알마게스트》를 썼고, 이 체계는 약 1,400년 동안 천문학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틀린 부분이 있었지만 정밀한 관측 기록과 계산 방법을 남겼다는 점에서 이후 천문학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후 이슬람권 천문학자들이 이 저작을 번역하고 개량하면서 관측 기술과 수학이 이어졌습니다.
폴란드의 사제이자 학자였던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임종 무렵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간해 태양 중심 모형을 체계적으로 제시했습니다. 이 책은 곧바로 모든 것을 바꾸진 않았지만, “지구는 우주의 특별한 중심이 아니다”라는 질문을 던지며 근대 천문학의 문을 열었습니다.
튀코 브라헤가 평생 모은 정밀한 관측 자료를 물려받은 요하네스 케플러는, 행성이 해를 타원 궤도로 돈다는 사실과 궤도 주기에 관한 세 가지 법칙을 찾아냈습니다. 독실한 루터교 신자였던 케플러는 자신의 연구를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뒤따라 읽는 일로 여겼다고 전해집니다. 성경의 “하늘의 법칙”(렘 33:25) 개념이 실제 수학으로 드러난 순간이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발명된 망원경 소식을 들은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직접 성능을 높여 하늘을 관찰했습니다. 그는 달 표면의 산과 분화구, 목성 둘레를 도는 네 개의 위성, 금성의 위상 변화를 발견했습니다. “모든 천체가 지구를 돈다”는 생각이 흔들린 순간이었고, 하늘이 완벽하고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도 무너졌습니다. 이후 갈릴레오는 로마 교회와 갈등을 겪었는데, 이 사건은 “과학 대 종교”라는 단순한 구도로 설명하기에는 정치, 신학, 개인적 갈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갈릴레오 자신은 끝까지 신앙인이었고, 성경과 자연이라는 두 책이 모두 하나님에게서 왔다고 보았습니다.
아이작 뉴턴은 《프린키피아》에서 사과를 떨어뜨리는 힘과 달을 궤도에 붙들어 두는 힘이 같은 만유인력이라는 사실을 수학으로 보였습니다. 하늘의 움직임이 땅의 법칙으로 설명되는 순간, 우주는 임의로 움직이는 신비한 영역이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체계가 되었습니다. 뉴턴은 이 정교한 체계가 지성적이고 능력 있는 존재의 계획에서 나왔다고 믿었습니다.
1838년 프리드리히 베셀이 연주시차를 이용해 별까지의 거리를 처음으로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별은 하늘에 박힌 점이 아니라 상상도 못 할 거리의 먼 태양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1859년 무렵 키르히호프와 분젠이 분광학의 기초를 세우면서, 별빛을 나누어 그 속에 어떤 원소가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직접 가 볼 수 없는 별의 성분을 빛만으로 읽어내게 된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질량이 시공간을 휘게 하고 그 때문에 빛도 휘어진다고 예측했습니다. 1919년 5월, 아서 에딩턴이 이끈 원정대가 개기일식 때 해 가장자리를 지나는 별빛이 휘어지는 것을 관측해 이 예측을 뒷받침했습니다. 해와 달이 겹치는 개기일식이 새로운 물리학의 시험대가 되었다는 점은 앞서 다룬 “해와 달의 크기의 조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1924년 에드윈 허블은 안드로메다 성운이 우리 은하 바깥의 또 다른 은하임을 보였습니다. 우주는 하나의 은하가 아니라 수많은 은하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그 사이 벨기에의 사제이자 물리학자 조르주 르메트르는 1927년 우주가 팽창한다는 해법을 내놓았고, 1929년 허블은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빨리 멀어진다는 관측을 발표했습니다. 르메트르는 이후 “원시 원자”에서 시작된 우주를 제안하면서 훗날 빅뱅 이론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었습니다. 영원하다고 여겨지던 정적인 우주는 시작이 있는 우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허블 딥 필드(1995~96년 촬영). 아무것도 없어 보이던 하늘의 작은 한 조각에서 수많은 은하가 드러났습니다. 이미지: NASA/JPL/STScI Hubble Deep Field Team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리며 우주 시대가 열렸습니다. 1961년 유리 가가린이 최초로 지구 궤도를 돌았고, 1969년 아폴로 11호가 인류를 달에 내려놓았습니다. 이 시기 경쟁은 냉전의 정치와 맞물려 있었지만, 그 결과 인류는 처음으로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1968년 12월 24일, 아폴로 8호가 찍은 「지구돋이」. 이미지: NASA/JSC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 창세기 1:1-2 (1968년 크리스마스 이브, 아폴로 8호 승무원들이 낭독한 창세기 1:1-10의 첫머리)
1968년 12월 24일 달 궤도를 돌던 아폴로 8호의 승무원들은 TV 생방송 중 창세기 1장의 첫머리를 읽었습니다. 인류가 처음으로 먼 곳에서 지구를 바라보던 순간에 터져 나온 말이 창세기였다는 사실은 오래 기억됩니다. 이듬해 아폴로 11호의 버즈 올드린은 달 착륙선 안에서 개인적으로 성찬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케플러, 뉴턴, 르메트르를 비롯한 많은 개척자는 우주가 질서 있는 창조주가 만든 곳이므로 탐구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성경의 “하늘의 법칙”이라는 개념, 그리고 해와 달과 별을 신으로 섬기지 않고 피조물로 보는 세계관이 이 탐구를 두려움 없이 시작하게 도왔다고 많은 역사가들이 지적합니다. (다만 과학의 발전에는 이슬람권, 인도, 중국 등 여러 문명의 기여가 있었고, 하나의 요인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2. 발견할수록 시야는 넓어지고 경이는 깊어졌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서 한 행성이 되었고, 태양은 수천억 개의 별 중 하나가 되었으며, 우리 은하는 수천억 개의 은하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걸 알게 될수록 시편 8편의 질문이 더 크게 울립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며…” 창조주의 크기 앞에서 우리의 작음을 알게 되지만, 그런 우리를 돌보신다는 복음은 더 놀라워집니다.
3. 아직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
암흑 에너지와 암흑 물질의 정체, 우주 시작의 첫 순간, 생명의 기원은 아직 풀리지 않았습니다. 잠언 25:2은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광이니라”고 말합니다. 탐구는 끝나지 않았고, 그 끝없는 탐구는 신앙인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더 깊이 알아 가는 여정입니다.